12월 ④편 - 버거운 숙제로 남은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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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예슬(상담팀) 등록일 22-12-05 13:46 조회수 2,362 영역 정신건강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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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자살예방센터 센터장
협동조합 행복농장 이사장
사단법인 세계의심장 상임이사
자녀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 4편. 애도
버거운 숙제로 남은 부재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합니다. 저의 진료실에도 이러한 상실의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옵니다. 단순히 죽음으로 인한 상실뿐 아니라 부모의 이혼, 반려견의 죽음과 같은 다양한 상실을 겪은 아이들입니다. 흔히 아이들에게는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장례식과 같은 의례에서 아이는 배제당하고, 때로는 슬픔을 숨겨야 한다고 강요받습니다. 그래서 제때 위로받지 못합니다.
상실 이후의 삶에는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삶이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을 잃는 사건에 직면하면 삶은 그 순간에 멈춰버리고 맙니다. 한 아이는 상실 이후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고되지 않은 재난이 나를 피난민으로 만들었다. 바로 그 전까지 당연했던 것들은 이제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송두리째 나와 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 비바람. 아직 주위에 맴도는 소용돌이. (…) 외지의 갈림길에 지도 없이 놓여 갈 곳이 없다."
학교에서는 자신을 보며 쉬쉬하는 친구들과 선생님, 집에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아이는 감정을 숨길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든 속내를 표현하면 남은 가족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섣불리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야 성숙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애도에도 정해진 추모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한 아이는 엄마의 3주기에 납골당에 가지 않고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엄마를 추도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아이를 마치 패륜아보듯 했다고 합니다. 진료실에서도 조심스럽게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납골당에는 1년에 몇 번 가야 하나요?”
“매년 가던 가족여행을 가도 될까요?”
애도 방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처럼 추모할 수도 있고, 고인과 함께했던 장소에 가거나 그를 추억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됩니다. 정해진 의례에만 신경 쓴다면 제대로 된 애도를 할 수 없습니다. 한편 아이들은 부모나 친구, 교사나 전문가들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더 힘들어합니다. 물론 어떤 말을 건넬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함께 아픈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상실을 경험한 아이들을 수없이 만나며 제가 느낀 것들을 토대로 보호자와 친구, 교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보호자에게는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남겨진 가족마저 잘못될까봐 걱정을 합니다. 보호자인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아이와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도 좋습니다. 고인과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며 새로운 삶의 일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상실을 겪은 아이의 친구라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결석한 기간 동안의 과제나 학사일정을 챙겨주고, 함께했던 일상적 활동이나 특별한 모임에도 망설이지 말고 초대해도 됩니다.
교사라면, 아이가 처한 상황을 세심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조손가정이라면, 왜 조부모와 사는지, 편부가정이라면 왜 엄마가 부재한지에 대해 부드럽게 질문합니다. 교사는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아이는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만약 학년이 끝나간다면, 아이의 허락을 구하고 새로운 교사에게 아이의 상황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아이에게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치료자라면 먼저,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어떤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치료방식이나 애도과정에 정답은 없으니 아이와 충분히 상의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실을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슬퍼해도 됩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슬퍼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상실의 아픔을 통해 고통스럽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한 아이의 글을 소개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있었던 일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없는 것을 다시 전과 똑같이 있게 할 수 없다.
(…) 죽음으로 인한 빈자리를 감히 완전히 대신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갔던 역사 또한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미친 영향도, 같이 보냈던 추억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비록 이제는 없지만 다른 요소들이 남아 나라는 나무의 나뭇가지가 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