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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칼럼

말 안 듣는 아이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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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경 등록일 10-12-30 00:00 조회수 9,423 영역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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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
  • 김은경
  • 약력 :
  • 성우심리상담소 소장, 상담심리전문가
  • 말 안 듣는 아이와 사는 법

      

     

    약 20년 전 새내기 상담자로 첫 상담을 시작한 곳이 청소년 상담실 이었다. 아이들을 만나 상담하는 것도 자신 없었지만,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서 상담하는 것은 정말 막막해서 피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운 없게도 늘 아이들보다는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고 싶어 했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애들 보다는 반항하는 애들 키우는 부모가 더 괴로웠던 것이다. 부모들의 호소를 듣다 보면 애들이 너무 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것저것 이해되기도 했지만, 한가지만은 시종일관 부모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버틴 것이 있다. ‘애들이 부모인 나를 무시해요...’ 무시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떳떳한 사람이 구린 사람을 대놓고 경멸하는 것인데... 애가 어른인 부모를 무시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는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인데 그걸 무시한다고 느끼는 부모의 피해의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 사춘기 자녀를 키우며 나는 간간히 애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아직 자기 힘으로 살아갈 주제도 못되면서 어른인 나의 말을 정말 오지게도 안 듣다못해 무시해버린다. 어릴 때는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말을 듣게 했지만, 이제는 힘으로도 당할 수가 없다.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그야말로 애와 싸울 수도 없고 계속 무시당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의 고통을 느끼면서 부모들이 그렇게 상담을 받고 싶었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자녀가 더 이상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부모는 이제 명령하는 어른이길 포기하고 대화하는 어른으로 그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제 부모의 말을 듣게 하려면, 아이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이 너에게 이롭단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부모인 나의 말이 정말 아이에게 이로운 것인가 먼저 생각해보게 된다. 내 맘에 안 드는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기 전에 한번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왜? 경험해봐야 나쁜 것은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내 아이의 판단력을 내가 무시하는 꼴이 되네!’ 전에는 단순하게 ‘안돼’ 라고 생각했던 기준들을 뒤집어 보고 엎어 치고 하면서 내 안의 불안, 편견들과 씨름을 하게 된다. 어떤 때는 그 과정을 아이에게 공개하고 의논하기도 한다. ‘엄마는 그 애의 욕설을 네가 닮을 까봐 불안해. 그래서 안 놀았으면 좋겠어. 네 생각은 어때?’ 오랫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또 징그럽게 말 안 듣게 된, 다시 말해 사춘기인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음을 열고 의논하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도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무엇일까 궁리하게 된다. 그리고 타협안을 찾는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것이 바로 상담이다.

    고등학교 기술가정교과서에 자녀가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쓰여 있다. 영아기의 부모는 보육자, 유아기에는 보호자, 아동기에는 양육자,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상담자의 역할을 해야 한단다.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부모인 우리만 모르고 아직도 자녀들을 애기 취급하면서 말 안 듣는다고 종 주먹을 댔던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부모는 상담자로 변신하셔야 살기 편하실 거다. 직업이 상담인 나도 내 아이의 상담자로 새롭게 변신 중이다. 부모는 변신에도 능해야하니 참 지루할 틈이 없는 종신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