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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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예슬(상담팀) 등록일 21-12-14 09:22 조회수 3,466 영역 성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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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스쿨 협동조합 대표강사
성교육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양육자 성교육을 다니면서 본 분들은 대부분 여성 양육자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대체로 평일 오전이고, 생업을 쉬어가며 듣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주말 프로그램 정도는 되어야 남성 양육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육자 대상 성교육 도서를 읽고 리뷰를 남기거나, 라라스쿨에 자녀 성교육에 대한 고민 글을 남기는 것도 대부분 여성 양육자입니다. 아이의 성교육은 대부분 여성 양육자가 담당하고 있고, 남성 양육자들은 자녀 성교육이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남성 양육자를 안 만나봤는데 어떻게 아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양육자 수업 후에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이 수업은 애 아빠가 들었어야 하는데!’ 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성교육을 아빠에게 맡기면 ‘그저 크면 다 알게 되어있다.’는 말만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또 아이가 야동을 보거나 자위를 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콘돔을 가지고 다니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 여성 양육자가 남성 양육자에게 이야기 했을 때, 남성 양육자는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남자 다 됐네.’ 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요.
자위를 할 때 필요한 에티켓, 야동의 문제점과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정보, 연인과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의사소통 방법과 감정 표현, 성관계 시 본인 및 파트너에 대해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내용들은 가정에서 나눠야 할 이야기들입니다. 단순히 양육자의 입장에서 걱정하는 ‘사고’만 안치면 되지 않느냐는 태도가 사실은 제대로 된 성가치관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별에 상관없이 양육자 모두 자녀 성교육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성장 과정 중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그동안 자라온 사회는 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금기시 해왔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사석에서 웃고 떠드는 주제가 아닌 진지하게 배우거나 누군가에게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남녀가 유별하다고 말하는 사회 덕에 나와 다른 성별의 자녀에게 성교육을 한다는 건 어렵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성교육을 하는 사람, 듣는 사람의 성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해왔다는 걸 고려한 성교육은 필요합니다. 어떤 성별은 성욕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고, 어떤 성별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어떤 성별의 성적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 성별의 성적 호기심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그런 사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통념들이 아이들의 사회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성별에 따라 성을 편하게 느끼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성별에 따른 서로 다른 경험 예시)
■ 여자애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되지.
■ 남자는 다 늑대야.
■ 그래도 피임은 여자가 더 신경 써야지.
■ 남자가 성욕을 어떻게 참니.
아이들이 경험한 서로 다른 경험을 수용하고 반박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적 신분 특성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아이들이 성에 대해 양육자와 편히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육자와 자녀 간의 위치와 차이 그리고 성별에 따른 차별, 폭력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같은 성별이라고 해서 꼭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을 때 조금 더 수월한 성적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이 글을 읽고 바로 아이에게 가서 ‘앉아보렴, 우리 성에 대해 대화 좀 하자.’ 하면 좋아할 아이들은 없습니다. ‘또 엄마가, 아빠가 어디서 이상한 거 보고 왔구나.’ 생각하겠지요. 그러니 아이와 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전 일상생활에서 여러분의 성가치관을 은연중에 보여주세요. 그리고 평소 대화에서도 자녀의 의견을 묻고 듣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시는 게 좋습니다. 성에 대한 대화는 그러한 분위기에서 훨씬 더 잘 이뤄질 것입니다. 혹은 도움을 요청하듯 물어봐도 좋습니다.
“오늘 엄마(아빠)친구가 자식이 연애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데 뭐라 얘기하는 게 좋을까? 너라면 내가 뭐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지난번에 뉴스 보니까 요즘 10대 임신이 많다던데 학교에서 피임법은 알려주니? 혹시나 그런 일 생기면 일단 혼내지 않을테니 제발 혼자 해결하지 말고 나한테 와서 얘기해.”
“너가 밤늦게 다녀서 무슨 일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늦게 들어올 땐 연락해. 데리러 갈테니까.”
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성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면 당황스러운 건 아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자녀에게 이렇게 한 마디 두 마디 양육자의 마음을 전달하면 언젠간 조금 더 편하게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자녀와 편하게 연애에 대해, 임신에 대해, 성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